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3주차, 게으름의 시작인가??
    달리다~ 路!!/잔차와 놀자 2015. 12. 21. 14:12
    728x90

    늘 뭔가가 귀찮아지면 핑계거리를 찾게된다.

    잔차를 타는 것도 그런것인가??

    3주차, 송년회다 날씨다 핑계를 대며 이틀을 잔차로 출퇴근했다.

    출근이야 시간에 쫓기며 어쩔수없이 짧게 타게 된다고하지만,

    퇴근시간까지도 살짝 근육이 뻐근해짐을 느끼며 또 짧게 달리게된다.

    결국 주말, 종산제 행사가 있기에 라이딩을 못하나싶었으나(이것도 중독인가??) 오후에 가까운 인근 사찰로 달려본다.

    아마 군생활 이후 처음으로 허벅지 등의 근육이 탱탱해지는 느낌을 받는듯하다. ㅋㅋ

    잠시 헬스를 할때도 이렇지않았던것같은데.........

    라이딩 일시 : 2015. 12. 16(수) ~ 12. 20(일)

    라이딩 거리 : 72.0km

    출근은 물치항, 대포항으로 퇴근은 이쪽저쪽으로 바꿔본다.

    이제 반복되는 풍경, 익숙한 풍경이기에 담아내는 횟수가 줄어들지않을까?!! ^^

    암튼 출근길 목우재고개길은 편하더니, 반대방향의 퇴근길은 옛길은 일찌감치 포기하고 터널앞에서 멈춰서 끌고~~ ㅜㅜ

    여전히 같은 출근길, 그리고 싸리재 퇴근길(목우재는 포기).

    이곳에서도 그냥 7번국도변쪽으로 내려갈까말까 망설이다가 억지로 장재터길로 접어든다.

    주말 쉴까말까 망설임보다는 어디로 조금 달려줄까 고민하다가 인근의 사찰로 라이딩을 나선다.

    마을앞 경지정리된 논둑길을 지나 사교리방면으로 달려서 다시 화일리지점에서 "영혈사"라는 조그마한 사찰로 달려본다.

    산 능선을 타는 오프로드는 아니지만, 모처럼 비포장 길도 달려본다.

    대한불교조계종 제3교구 본사인 신흥사()의 말사로, 원효()가 설악산에 와서 처음 일출암()을 짓고 2년 후인 689년(신문왕 9)에 이 절을 창건하였으며, 이어서 청련암()을 세웠다고 전한다.

    그러나 원효는 686년에 입적하였으므로 창건연대에는 신빙성이 없다.

    그 뒤 1690년(숙종 16)에 취원()이 중건하고 영천사()라 하였다가 1887년(고종 24)에 지화()와 도윤()이 중수한 뒤 다시 영혈사라 하였다.

    6·25 때는 치열한 설악산전투를 겪으면서도 전화를 면하였다.

    원효가 이 절에서 낙산사 홍련암()까지 선장()으로 샘물줄기를 끌어갔다는 설화가 전한다.

    현존하는 당우로는 정면 3칸, 측면 2칸의 원통보전(殿)과 산신각·요사채 등이 있으며, 원통보전 안에는 관세음보살이 봉안되어 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

    영혈사 산신각 앞에는 1992년 11월 준공된, 조국수호를 위해 산화한 국군요원(아마도 HID대원들을 말하는게 아닐까싶다)들의 충의와 숭고한 정신을 추앙하기위해 위패를 모셔둔 충령각이라는 당우가 있다.

    생각보다 깊은 산골에 위치한 영혈사는 비구니 스님이 기거하며 기도정진하는 사찰인듯하다.

    그런 사찰에 국군요원들의 위패를 모시고 추앙하기위한 당우를 준공하였으니, 많은 사람들이 찾지않더라도 정부의 지원(2003년 7월 국가 현충시설로 지정)을 통하여 운영될 수 있지않을까싶다.

    안내판의 글귀를 통하여 어디까지나 추측해본 내용이다. ^^

    잠시 쉬며 물한모금(영혈수)도 마시고, 땀을 식혀본다.

    잠시 쉬어가는 사이 경계의 눈빛으로 사람을 맞이하던 백구가 배웅이라도 하듯이 내려다보고있다. ^^

    그리 늦은 시간은 아니지만 화일리에서 물갑리를 지나 간곡리로 들어서며 바라보는 설악의 봉우리는 석양빛이 물들기전 히말라야의 그 봉우리들처럼 은빛을 발하며 눈길을 끈다.

    이렇게 생일인지도 깜빡 잊었던(물론 가족들은 축하해주며 챙겨주니 감사하고~) 하루를 또 땀흘리며 뱃살 걱정을 잊어본다. ^^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