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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역사문화탐방>역사만큼 구부러진 길을 따라 영월로~
    오르다~ 山!!/셰르파활동 2016. 5. 20. 1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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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랜만에 많은 셰르파들과 도전단들이 함께하는 자리에 참석을 한다.

    역사문화탐방을 진행하시는 셰르파님의 소개에 따르면 "단종의 유배길과 죽음의 흔적 그리고 비경을 쫓는 탐방"이 그 자리다.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기념물 제5호로 지정되었다가 2008년 12월 26일 명승 제50호로 변경되었으며, 영월군 남면 광천리 남한강 남한강 상류에 있다.

    강의 지류인 서강(西)이 휘돌아 흘러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있고 한쪽으로는 육륙봉()의 험준한 암벽이 솟아 있어서 마치 한반도처럼 생긴 지형이다.

    조선 제6대왕 단종이 1456년 6월에 일어난 사육신의 단종복위거사의 실패로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다음해인 1457년 6월 노산군으로 강봉된후 유배길에 오르게되고,

    그해 여름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물에 잠기게되면서 강 건너 영월부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기기 전까지 두어 달간 이곳에서 생활하였던 곳이다.

                                                                            - 셰르파님의 설명이 있으되 그 더위속에서 그 많은 역사이야기와 재미를 곁들인 야사를 기억하지 못하기에 "두산백과" 참조 -


    우리의 걸음에는 인증샷 남기는게 중요한 과정중 하나다.

    같은 강원도이면서도 서울보다 더 멀게 강원도의 땅을 찾아가게 되는 아침의 풍경,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준비로 한창인 해당지역은 휴게소부터 정비공사로 인하여 간이로 운영하더니 왕복 2차선 도로도 양방향을 교차로 운행시키며 기반시설 공사가 한창이다.

    딸아이는 피곤함(사실 아빠를 닮아 차만 타면 잔다는 사실~)을 못이겨 차안에서 쓰러진다. ^^

    현지합류팀인 우리와 최순관 셸파가족들은 예정시간보다 일찍 도착하여 그동안의 궁금했던 이야기들을 주고받으며 도전단들을 기다리는데, 서울에서 오는 길이 역사만큼이나 힘든 도전단들의 버스는 예정시간을 넘겨 도착한다. ^^

    그러나 오랜만의 만남에 반갑게 인사를 나누며 오늘의 일정을 시작한다.

    청령포 주차장 앞에는 "오백년만의 해후(邂逅)"라는 작품이 우뚝서서 역사를 찾아온 후세들을 맞이한다.

    작품의 의미는 그 옛날 단종과 우리 역사탐방도전단들의 해후가 아닌, 단종과 정순왕후의 슬픈 별리(別離)를 기억하고 재회를 희망함을 담은 것이다.


    청령포를 조망하며 단체사진을 부랴부랴 촬영하고, 관풍호라는 어마무시하게 큰 유람선을 타고 한반도로 향한다.

    우리의 역사문화탐방 셰르파께서는 출발부터 쉼없이 역사와 야사를 곁들여 설명을 시작하시고~

    청령포의 관음송이 역사를 품고 우리를 맞이하려면, 비슷한 나무들이 주변을 어우러줘야 그 깊이가 더 한 법이다.

    많은 소나무에 일련번호를 붙여가며 관리를 하고 있는 흔적이 색다르다.






    우리나라의 한반도 지형처럼 삼면이 서강으로 둘러쌓인 청령포 속에는 단종이 살았었음을 알리는 "단묘유지비(碑)와 어가", 단종이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었다는 "노산대(山臺)", 한양에 남겨진 정순왕후를 생각하며 쌓았다는 "망향탑()", 외인의 접근을 금지하기 위해 세웠다는 "금표비(碑)" 그리고 단종의 이러한 시름과 통곡소리를 들어준 현재 수령600여년이 된 벗이라는 "관음송(觀音松)" 이 있다.

    관음송을 배경으로 지난해 역사문화탐방 낙산사편과 영남알프스 백패킹을 통해서 낯익은 이모들과(태연이가 기억하려나?? ^^) 한컷을 남겨본다.

    누구는 노안인데 한참 어린듯한 동안의 젊은 남녀(결혼을 앞둔)를 축하하려고 역사셰르파께선 너무도 어려운 문제를 제시하여 너무도 어렵게 맞추니 쿠폰 한장~~ 얼마짜리일까?? ^^


    청룡포에서의 약간은 늦은 역사탐방의 시작을 마치고 벌써 점심시간, 딸아이와 너무나 가볍게 참여한 나이기에 먹거리는 준비가 안되었고 많은 분들이 도시락을 함께 하자고 하는데 따라와준 딸아이에게 선택권을 주니 시원한 냉콩국수~~!! ^^

    우리네 역사(歷史)도 야사(野史)가 있기에 더 흥미진진한법인데, 야사에 해당할 수 있는 점심시간의 흥겨운 시간을 함께하지 못하였으니 제대로 역사문화탐방을 즐겼다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싶다.


    점심시간을 마치고 휴식인듯 아닌듯, 장릉에서의 또 쉼없는 설명이 이어진다.

    사실 영월은 같은 강원도이지만, 영동과 영서의 정 반대에 위치하여 멀기도한 반면 처가댁 식구가 직장때문에 근무할때 오가던 곳이기도 하여 익숙한 지역이다.

    익숙한 지역이면서도 연세있으신 어르신들과 편하게 들러볼 수 있었던 곳, 장릉을 역사선생님(셰르파)의 설명과 함께 거닐게 된다.

    장릉은 조선 제6대 왕 단종( 1441~1457, 재위 1452∼1455)의 무덤으로, 1970년 5월 26일 사적 제196호로 지정되었다.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영월에서 죽음을 당한 후 동강에 버려진 단종의 시신은 영월의 호장() 엄흥도()가 몰래 수습하여 동을지산 자락에 암장하였다.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다가 1541년(중종 36)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내어 묘역을 정비하였고, 1580년(선조 13) 상석·표석·장명등·망주석 등을 세웠다.

    1681년(숙종 7) 단종은 노산대군()으로 추봉되고, 1698년(숙종 24) 11월 단종으로 추복되었으며, 능호는 장릉()으로 정해졌다.        - 두산백과 참조 -

    역사 셰르파님의 설명!!

    영월로 부임하는 군수마다 부임 첫날 밤에 죽는 해괴한 일이 일어났는데, 박충원은 신하들의 피신하라는 권고를 물리치게 되고 그날밤 비몽사몽간에 임금의 명을 받고 왔다는 사람에게 이끌려 운무가 가득한 숲 속으로 들어가게 된다고 한다.

    그 숲속엔 어린 임금을 모시고 6인의 신하가 둘러 앉아있는데, 임금이 박충원을 처형할 것을 명했으나 3번째 앉은 신하가 살리자고 아뢰어 처형만은 면했다고 한다.

    어린 임금은 박충원에게 "이전 수령들은 나를 보자마자 죽었는데 그대는 나를 맞아주었구나. 내가 어려움에 처했는데 도와주면 그대에게 큰 복을 내리리라"란 소리를 듣고 꿈에서 깬 박충원은 꿈속에서 본 왕이 단종이라 여겨 묘소를 수소문, 엄흥도의 후손을 앞세워 찾은 무덤은 꿈속의 그 숲속이요, 묘소를 수습후 목에 걸린 올가미를 풀어주니 뼈만 남은 시신은 "휴~"하고 큰 숨을 내쉬었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이후 박충원은 봉분을 세우고 제례를 올린후 조정에 장계를 올리고, 훗날 이 장계가 발견되어 영월군에서 박충원 추모비각을 장릉안에 세워준다.

    조정의 대신도 못들어가는 자리에 군수의 추모비가 세워지니 이것이 단종이 박충원에게 내린 큰 복이라는 설명이다.




    2009년 6월 30일 장릉을 포함한 조선왕릉 40기가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다는 입구의 표지판과 단종역사관 옆의 그늘에서 셰르파님의 설명후 본격적으로 단종의 묘(장릉)로 향하는 길에 멋진 아름드리 소나무가 있다.

    하여 담아봤다.

    정령송이라는 기념석이 있다.

    정령송은 단종의 비인 정순왕후의 능인 사릉에서 이식해온 것으로, 15세에 두 살 어린 단종과 대례를 치른 정순왕후 송씨는 어린 소나무가 되어 그렇게 묵묵히 단종 곁에 머물고 있다는데

    실제 정령송(精靈松)은 멋진 아름드리 소나무가 아니라 자그마한(99년 4월에 이식해온~) 소나무인듯하다. ^^


    능의 구조, 주변과의 풍수 등과 관련한 설명을 하시는 셰르파님, 다른 분야도 설명을 하려면 힘들겠지만 역사분야는 특히 박학다식해야하지않을까하는 생각을 해본다.



    단종의 묘가 조성된 곳에는 단종을 위해 순절한 충신을 비롯한 264인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영월부사 박기정(사육신 박팽년의 후손)이 정조 15년(1791년)에 건립된 장판옥(藏版屋)과 영령을 추모하기 위한 제단 배식단사(), 단종의 시신을 수습함으로써 영월을 충절의 고장으로 만든 엄흥도를 위해 영조 2년(1726년)에 어명으로 세운 정려각(閣), 박충원의 행적을 새긴 낙촌비각(碑閣), 정자각, 홍살문, 재실(齋室), 정자(배견정,  亭) 등이 있다.

    왕릉에 사당, 정려비, 정자 등이 있는 곳 또한 장릉뿐이라는 것 또한 단종의 비애와 관련된 것이라 볼수 있다.





    실제로는 우리의 진사님들 많은 도전자분들의 탐방표정을 다양하게 잡기위해 수고해주신다는 사실을 알리면서 재미를 위해 꾸민 것임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




    역사문화탐방에 걸음을 함께 하기는 하지만, 이날이 장모님 생신을 앞두고 가족들이 모일수 있는 주말이기에 시간에 쫓긴다.

    하여 일부 셰르파분들에게 양해를 구하긴하지만, 고개를 넘어가는 길목인 선돌까지는 함께 하기로 하며 관풍헌에 들러서 유쾌한 연기를 감상한다.

    관풍헌은 1971년 12월 16일 강원도유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으며, 1392년(태조 1)에 건립된 영월 객사의 동헌 건물로 지방 수령들이 공사()를 처리하던 건물이다.

    1456년(세조 2) 단종이 유배되었던 청령포에 홍수가 나자 단종의 거처로 사용되었던 건물로 단종은 관풍헌에 머물며 인근의 자규루에 올라 자규사()와 자규시()를 읊었다고 전해지며, 이듬해인 1457년 10월 24일 단종은 17세의 일기로 관풍헌에서 사사되었다.        - 두산백과 참조 -


    홍수로 청령포가 범람하자 관풍헌으로 옮겨가 생활하며 동쪽의 자규루에 자주 올라 소쩍새의 구슬픈 울음소리에 자신의 처지를 견준 《자규사()》를 지었다고 한다.

    이 때문에 원래 매죽루()였던 것이 후에 자규루로 개칭되었다.

    단종이 이곳에서 지은 시 가운데 가장 널리 알려진 「자규시()」는 구중궁궐을 떠나 영월 땅에서 귀양살이하는 자신의 피맺힌 한을 표현한 것이다.

                                 한 마리 원한 맺힌 새가 궁중을 떠난 뒤로
                                 외로운 몸 짝 없는 그림자가 푸른 산속을 헤맨다
                                 밤이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밤이 와도 잠을 못 이루고
                                 해가 가고 해가 와도 한은 끝이 없구나
                                 두견 소리 끊어진 새벽 멧부리에 지새우는 달빛만 희고
                                 피를 뿌린 듯한 봄 골짜기에 지는 꽃만 붉구나
                                 하늘은 귀머거린가, 애달픈 하소연 어이 듣지 못하는가
                                 어찌하여 수심 많은 이 사람의 귀만 홀로 밝은고                                - 신정일의 다시 쓰는 택리지  참조 -



    절대로 전종현셰르파께서는 위와 같은 행동을 하시지않았지 말입니다.

    이 또한 스토리의 재미를 위한 픽션(fiction)임을 알려드리는 바입니다. ^^

    영월읍내 한가운데 위치한 관풍헌의 탐방을 마치고, 딸아이와 함께하는 역사탐방의 마지막 코스인 선돌로 향한다.

    딸아이는 괜스리 모였을 가족들이 기다릴까봐 조급해하는데,

    아빠는 걱정하지마라며, 저녁 시간 전에는 도착할 수 있다고 달래어보는데~~ ^^

    선돌은 단종의 유배길에 얽힌 이야기도 있지만,

    1820년(순조 20) 문신 홍이간( 1753~1827)이 영월부사로 재임하고 있을 때 문신이자 학자인 오희상( 1763~1833)과 홍직필( 1776~1852)이 홍이간을 찾아와 구름에 싸인 선돌의 경관에 반해 시를 읊고, 암벽에 ‘운장벽()’이라는 글씨를 새겨 놓았다.

    선돌아래 깊은 소에 위치한 자라바위 전설에 의하면, 남애마을에 태어난 장수가 적과 싸우다 패하여 자라바위에서 투신했는데 그가 변하여 선돌이 되었다고 하며, 그 후로 선돌에서 소원을 빌면 한 가지는 꼭 이루어진다고 한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참조 -

    역사문화탐방 셰르파님,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딱 한번 참석한 딸아이에게 뭔가 선물을 주고는 싶은데 아빠처럼 적극적으로 나서지않는 아이를 위해 또 엑션을 취하고........

    딸아이는 주변의 반응을 살피다가 어렵사리 선물을 받는다.(양보해주신 많은 도전단님들 감사하드래요~~)

    역사문화탐방을 주관하시는 셰르파님에게 양해를 구하고 셰르파들 단체사진을 촬영후 하직인사를 한다. ㅋㅋㅋ



    작별인사를 하고 발길을 돌리려는데 명산40 시절부터 우연히 온라인으로 인연을 이어오시는 이모 한분께서 잘가라며 딸아이에게 선물, 셰르파님이 어렵게 지급해준 쿠폰도 담아본다.

    모(某) 셰르파께서 너무 많은 것을 주셔서 차마 그건 담으면 감당불가일듯하여 인증샷에선 패스한다. ㅋㅋㅋ

    모두들 관심과 배려를 보여주셔서 감사합니다.

    아울러 마지막 구간까지 또 함께 하지못하여 양해의 말씀을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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